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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7월 29일 일본 카나가와현 자마쵸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한 소년이 산에서 겅기총을 총을 쏘고 있으니

출동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소년이란 말에 경찰은 혼자 산에 갔고

그 곳에서 소년이 쏜 공기총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소년은 쓰러진 경찰에게 다가가

총의 개머리판 부분으로 경찰을 수차례 내리쳐 살해 후

제복과 권총을 강탈한다.



소년의 이름은 '카타기리 미사오(片桐操)'총기 매니아라고 한다.

총기소유 면허를 가졌으나 공기총 밖에 구입할 수 없자

경찰을 살해해 권총을 뺏은 것으로 추측된다.


출동한 경찰이 돌아오지 않자 동료 2명이

추가로 현장에 보내지지만 미사오에 의해

총을 난사 한 명이 부상당하고, 한 명은 도망친후

카나가와현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려 긴급수사본부가 차려진다.


미사오는 사건 현장에서 도주하였고 지나가던 차를 붙잡아

자신은 경찰관이며 파출소로 태워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파출소 앞에 오자 미사오는 운전자를 위협한다.


그가 운전자를 위협한 것은 카나가와현 경찰들에게

내려진 지시 때문인데 '민간 차량에서 내린 경찰관에게

대응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그렇게 경찰과 대치하던 중 지나가던 차량이

호기심에 정차하자 인질을 경찰들에게 밀어버린 후

정차한 차 운전자를 다시 인질로 잡고 도주한다.


도쿄 방면으로 도주하던 미사오는 라디오에서

경찰들이 카나가와현 도쿄 방면을 검문 중이라는

소리에 이동 방향을 변경, 가와사키로 갔고

다시 차를 강탈하여 도주한다.



경찰이 이 소식을 듣고 카와사카시 인근을 수색하나

미사오는 또 다시 다른 차를 강탈하여 그 곳을 탈출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부야에 있는 총포상으로 향한다.



총포상에 도착한 미사오가 차에서 내리자

차 안에 있던 인질 2명은 소방서로 도망쳐

신고를 하게 되면서 총포상은 경찰에 의해 포위된다.


미사오는 총포상에 침입하여 직원 3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들을 향해 110여발의 공기총탄을 발포한다.

이곳은 사람이 많은 시부야역에서 5분 거리에 있던 이곳은

당시 사람이 많았기에 이 총격전으로 16명이 부상을 입는다.


경찰은 오후 7시 20분 최루탄을 발사하였고

미사오는 2명의 여성 인질을 방패로 밖으로 나오지만

몰래 접근한 경찰관 2명에게 체포된다.



체포된 그는 "지금도 총의 매력에 빠져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일 수 없게 사형시켜 달라"말하였고


1967년 4월 13일 요코하마 지방법원 '무기징역'

1968년 항소심에서 교화의 여지가 없다며 '사형 선고'

1969년 10월 2일 최고재판소에서도 사형이 선고되며

1972년 7월 21일 미야기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카타기리 미사오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少年ライフル魔事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