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일본 1923년 9월 16일 무정부주의자

오스기 사카에와 내연녀 이토 노에가 실종된다.


그들이 실종될 때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이로 인해 오스기 사카에의 여동생이 다쳤고,

병문안을 갔고, 그 곳에서 여동생의 아들

타치바나 소이치(6세)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카나가와현으로 가던 그들은 홀연히 사라진다.



그들의 신상을 찾던 중 많은 목격자가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헌병들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신문사에서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들이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발부한다.


이 당시 경시청에서는 군부와 큰 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기회로 경시청에서 군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계속된 경시청에 압박에 의해 군부에서는

헌병대 대위 아마카스 마사히코가

오스기 일가를 살해하였다고 밝혔다.



피해자 세 사람은 오래된 우물에서

모두 사망한채 발견되었다.



9월 24일 군법회의 재판정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무정부주의자들이 관동대지진의

틈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할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무정부주의자들의 중심인 오스기와 이토를 살해하겠다고 결심.

그들을 납치하여 당일 세 명 중에 한 명을 살해하였다'고 자백한다.


군법회의에서는 아마카스 마사히코에게 징역 10년의

판결을 내리나, 형량을 절반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석방되고

육군성의 지원에 의해 프랑스 유학,이 후 만주로 가서 만주국에 관여.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1945년 8월 자살한다.



그런데 아마카스 마사히코를 범인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그의 진술이 엉망진창이다. '아이는 죽이지 않았다'라고 했다가,

갑자기 '세 명 모두 죽였다'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형량의 반도 안됬는데 육군성의 지원으로 유학을 간 것도 이상하다.

이를 근거로 진범은 그의 배후에 있는 상층부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만주에 있을 때 자신의 입으로 "내가 죽이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한 것도 그렇다. 다만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돌아이 소질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모두 믿기도 애매하다.


만약 진범이 아마카스 마사히코가 아니라 그의 배후에 있던 상층부의

소행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에는 아마카스 마사히코가 진범이라

영원히 기록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